어머니는 혼자 거동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119를 통해 응급실로 모셨다.
응급실에서는 여러 검사를 진행했고, 경미한 뇌출혈과 폐렴, 폐에 물이 차 있는 상태가 확인되었다.
아버지는 이미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두신 상태였고,
어머니도 의료진에게 그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명치료를 거부했다고 해서 모든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의료진은 산소치료와 항생제 치료를 시작했고,
폐렴 치료를 위해 응급병동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당시만 해도 아버지는 의식이 또렷하고 대화도 가능했다.
오히려 “집에 가겠다”며 소리를 지르시고,
여러 개의 주사와 치료를 거부할 정도로 반항이 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6인실에 계셨지만, 새벽까지 이어진 행동 때문에 다른 환자들을 위해
응급처치실이라는 별도의 공간으로 옮기게 되었다.

복수를 빼기 위해 복부에 천자관을 삽입해 놓았는데,
아버지는 그것마저 손으로 빼려고 하셨다.
의료진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해
아버지 손에 보호장갑을 끼우고 침대에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모든 기운을 쏟아내신 탓이었을까.
다음 날부터 아버지의 상태는 눈에 띄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응급실에서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응급실에서는 먼저 환자가 회복 가능한 상태인지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를 판단하고,
의료진이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 비로소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의료 중단 여부가 적용된다.
따라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응급실에서 아무 치료도 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과정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제도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처음 입원했을 당시 의료진은
일반 산소치료 대신 고유량 비강 산소치료(HFNC)를 시행할지
어머니에게 물었고, 어머니는 치료를 진행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아버지의 산소포화도와 혈압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난동이 있었던 다음 날,
체력이 많이 지친 어머니와 교대하기 위해 내가 응급병동을 찾았다.
오전 11시쯤 처음 마주한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전날 집에 가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치료를 거부하셨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을 만큼,
아버지는 거의 말을 하지 못한 채 힘겹게 숨만 쉬고 계셨다.
눈은 뜨고 계셨지만 의식이 또렷한지는 알 수 없었고,
낙상으로 생긴 멍이 눈가까지 번져 더욱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응급처치실 한가운데에서 커다란 산소장비에 의지한 채
손이 보호대로 고정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차마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정말 마지막이 가까워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진은 어머니와 나를 따로 불러
폐렴 치료는 최소 일주일 이상 경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아버지께서 그 시간을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1인실로 병실을 옮기기를 권했다.
1인실로 옮긴 뒤에는 보호자 1명만 상주할 수 있다는 원칙이 예외적으로 적용되어
가족들의 면회가 허용되었다.
출입을 관리하는 보안요원에게도 전달되어
친척들과 가까운 지인들까지 병원에 출입이 가능해졌고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날 저녁 우리 가족은 전부 모였다.

아버지는 복수천자와 항생제 치료, 산소치료, 가래 제거 등의 치료를 받고 계셨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경고음이 울릴 만큼 산소포화도가 불안정했고,
대부분의 시간은 눈을 감고 계셨다.
가끔 눈을 뜨시기도 했지만 말을 하실 수는 없었고,
부르면 아주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만 가능했다.


몸이 불편하신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거나 손을 조금씩 움직이셨지만,
어디가 불편하냐고 여쭤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셨다.
깨어 계신 건지, 잠들어 계신 건지 알 수 없는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정상적인 산소포화도는 보통 90% 이상이라고 하는데,
아버지는 대부분 80% 안팎을 유지했다.
때로는 80% 아래로 떨어져 강력한 경고음이 울렸고,
호흡수와 맥박이 급격히 변할 때도 반복적으로 경고음이 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가족들은
폐렴 치료가 더 이상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코와 목으로 호스를 넣어 가래를 제거하는 과정은
보는 것조차 힘들 만큼 고통스러워 보였다.
치료를 받을 때마다 호흡은 더욱 거칠어졌고,
독한 항생제와 알부민 투여 역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버지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가족들은 충분히 상의한 끝에 담당 의사를 찾아가
항생제 투여와 가래 제거처럼 고통이 큰 치료는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이를 완화의료라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 가족의 경우에도 고유량 산소치료와 복수천자는 유지하되,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치료는 중단하고
통증과 불편함을 줄이는 치료를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필요하면 진통제와 진정제를 사용해
마지막 시간을 조금 더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살아 계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는 것보다,
남은 시간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료진이 가장 큰 고비라고 했던 그날 밤,
아버지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기적처럼 그 시간을 버텨내셨다.


1인실에도 보호자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원래는 내가 혼자 밤을 지키기로 했지만,
둘째 언니도 함께 있겠다고 해서
그날 밤 우리는 둘이서 아버지 곁을 지켰다.
의료진은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이라고 했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날 새벽,
아버지는 전날보다 한결 편안하게 잠드신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우리도 번갈아 잠시 눈을 붙였고,
아침이 되어 모니터를 보니 산소포화도와 호흡수가
전날보다 조금씩 안정되어 있었다.

간호사와 의사는
수치가 좋아졌다고 해서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전날보다 눈을 더 자주 뜨셨고,
부르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표정으로 반응을 보이셨다.

다음 날에는 친척들이 많이 찾아오셨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알아보시는 듯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도 꽤 해주셨다.
전날과 비교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의 변화였다.
기계에 표시되는 산소포화도 수치가 좋아진 만큼
실제 컨디션도 함께 나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산소포화도는 어느새 95% 전후로 유지되었고,
가래 소리도 줄어들었다.



우리 가족은 조금씩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잠깐이지만 의식이 또렷해진 덕분에 우리뿐 아니라
친척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전날보다 훨씬 편안하게 잠들어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비를 넘기신 걸까.’
‘이대로 조금 더 버티실 수도 있지 않을까.’
‘가족 면회는 언제까지 허용될까.’
‘다시 보호자 1인 체계로 돌아가는 걸까.’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는 걸까.’

그때는 정말 그런 생각들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지막으로 찾아온 아주 짧은 평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는 잠들어 계시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산소포화도와 다른 수치는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됐지만,
의식은 다시 서서히 흐려지는 듯했다.
깨어 계신 시간보다 잠들어 계신 시간이 더 많아졌고,
말은 여전히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숨만 쉬고 계셨다.

그리고 고비를 넘긴 지 사흘째 되던 날,
아버지는 가족들의 곁에서 조용히 마지막 숨을 내쉬셨다.





나는 인간의 마지막 순간에는 과연 어떤 이유로 사망선고가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사고나 급성 심근경색, 대량 뇌출혈처럼 갑작스러운 경우를 제외하면,
말기 환자의 경우에는 여러 장기의 기능이 점차 저하되면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 역시 날이 갈수록 산소포화도와 혈압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임종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던 날,
혈압이 급격히 저하된 뒤
약 10여 분 후 심장이 조용히 멈추셨다.

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은 돌아오지 않으셨고,
나는 그 임종의 순간을 곁에서 지키지는 못했다.

병원으로 달려가 다시 뵌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놀라움과 함께 안도의 마음이 밀려왔다.
‘아버지는 큰 고통 없이 편안하게 가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의 눈물이 핑 돌았다.

더 이상 힘겹게 숨을 쉬지 않아도 된다는 것,
편안한 표정으로 마지막을 맞이하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 뿐이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버텨주신 덕분에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곁에서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큰 위안으로 남았다.

아버지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병과 상황을 생각했을 때
가장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아버지의 빈자리는 크고,
그리움과 슬픔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후회나 미안함보다는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보내드렸다는 마음이
우리 가족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돌이켜보면 볼수록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가 편안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신 의료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든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아버의 마지막 시간이
그렇게 평온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늘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우리의 삶의 처음과 마무리를 도와주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
이번 일을 겪으며 의사와 간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큰 책임과 사명을 안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일 뿐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한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 또한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정답을 알려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다만 갑작스럽게 부모님의 임종을 마주하게 된 가족들에게,
우리가 겪었던 경험과 선택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같은 상황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덜어드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록을 남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시간을
후회 없이 함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