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021년 7월.
아버지는 다시 많은 양의 피를 토하셨고,
욕실 바닥이 피로 물들 정도의 출혈이 발생했다.
곧바로 응급실로 이송되어 두 번째 결찰술을 받으셨다.

우리는 완치할 방법이 없는지 수없이 찾아봤지만 의료진의 답은 같았다.
“근본적인 치료는 간이식뿐입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는 이미 80대였고, 수술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본인이 간이식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는 이 병이 완치하는 병이 아니라
버티는 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간경변은 단순히 간이 나쁜 병이 아니라,
언제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도 그때 절실히 실감했다.


두 번째 응급수술까지 받으신 뒤부터는 아버지의 불안도 더욱 커졌다.

아버지는
“몸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
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가족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식사도, 활동도, 작은 몸의 변화도 모두 신경 쓰며 지냈다.

그렇게 또 다섯 달이 흘렀다.
조금은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아버지는 세 번째 식도정맥류 출혈
다시 응급실에 입원하셨다.

식도정맥류 결찰술은 간경변증 등으로 인해 식도의 정맥이 혹처럼 부풀어 오른
‘식도정맥류’를 치료하는 내시경 시술이다.

식도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여 자칫하면 파열될 위험에 처하는데,
이때 특수한 고무 밴드가 장착된 내시경을 이용하여 부풀어 오른 혈관을 묶어버리는 방법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빵빵하게 부푼 풍선의 입구를 고무줄로 꽉 묶어서 공기를 차단하듯,
혈관의 목 부분을 묶어 피가 통하지 않게 하여 괴사시키고 탈락시키는 원리다.




인생은 참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식도정맥류 출혈 이후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큰 위기를 겪었지만,
그 이후에는 예상과 달리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세 번째 퇴원 후
무려 4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지내셨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살던 집도 그대로였고, 식사하시는 패턴도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몸속에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도, 우리 가족도 조금씩 그 두려움에 익숙해졌다.

오히려 아버지는 점점 더 기운이 차오르는 듯 보였다.
계절과 상관없이 동네를 걸으며 운동을 하셨고,
친구들도 만나러 다니셨다.
가족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피검사와 간 기능 검사를 받았지만,
의료진도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다고 했다.

“이대로 병이 나을 수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도 아버지 몸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체중 감소였다.

식사량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밥도 한 그릇씩 드셨고, 고기도 잘 드셨다.
그런데도 몸무게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팔뚝과 허벅지는 점점 가늘어졌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변화는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기 시작한 것이었다.

2년 전쯤부터 아버지는 늘 춥다고 말씀하셨다.
온돌 침대에서 주무셨고,
거실 소파에도 전기장판을 깔아 놓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1단 이상 켜신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여름이 가장 편하다고 하셨고,
겨울에는 전기장판을 잠깐만 벗어나도 손발이 금세 차가워지곤 하셨다.

말기 간질환 환자는 근육과 지방이 감소하고
간의 대사 기능도 떨어지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이 약해진다고 한다.
당시에는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병이 보내고 있던 또 하나의 신호였던 셈이다.




2025년 5월
아버지는 위가 불편해 병원을 찾으셨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으셨다.

“복수가 조금 차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발등이 약간 부어 있었지만,
병원에서는 아직 심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도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고,
우리 가족도 복수가 간경변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복수는 간경변이 진행되면서 문맥압이 높아지고,
혈액 속 단백질(알부민)이 부족해지면서
혈관 안의 수분이 복강으로 빠져나와 고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붓기가 심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발등이 부었다가도 며칠 지나면 다시 가라앉았고,
배도 크게 불러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런 변화가 몇 차례 반복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병이 심해지는 과정이라기보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숨이 차다고 하셨고, 자세히 보니 배가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했다.
결국 복수를 빼기 위해 입원하셨다.

복수천자를 하고 배액관을 연결한 채 며칠을 지내셨는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무척 불편해하셨다.

복수만 빠지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며칠 동안 치료를 받아도 복수는 계속 만들어졌고,
검사 수치도 조금씩만 호전될 뿐이었다.

평소에도 병원을 답답해하시던 아버지는 점점 지쳐가셨다.
주사도 싫고 병실에 갇혀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들다며 퇴원을 고집하셨고,
의료진을 힘들게 하실 정도로 예민해지기도 했다.

결국 완전히 호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 일주일 만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셨다.

이후에도 복수는 찼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붓기가 줄어들어 괜찮아 보였고,
또 어느 날은 배가 다시 불러왔다.
그래서 가족들도 입원을 권해야 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할지 매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겨울이 되면서는 오히려 컨디션이 조금 회복되는 듯했다.
외출도 종종 하셨고, 큰 문제 없이 겨울을 보내셨다.
우리 가족도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따뜻한 봄이 다시 찾아오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다고 하셨고,
가까운 산책조차 힘들어하셨다.
걸음은 눈에 띄게 느려졌고, 활동량도 점점 줄어들었다.
다시 입원을 고민했지만,
이상하게도 며칠이 지나면 복수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날도 있었다.

증상이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나빠지는 일이 반복되니,
본인이 원하지 않는 입원을 가족이 강하게 권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2026년 5월이 찾아왔다.



2026년 봄

아버지의 몸 상태는 예상보다 빠르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숨이 많이 차서 잠을 편히 주무시지 못했고,
이제는 짧게 말씀을 하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예전보다 자주 넘어지셨고, 식사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
식사를 대신해 뉴케어 같은 영양음료를 드시는 날도 점점 많아졌다.

그래도 아버지는 끝까지 집에 계시기를 원하셨다.
스스로 거동도 가능했고, 무엇보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제는 더 이상 집에서 지내시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강제로라도 입원을 모셔야겠다고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었던 2026년 5월 28일 새벽.
아버지는 화장실을 가시다 넘어져 거실 장식장에 머리를 크게 부딪히셨다.
놀란 어머니가 혼자 힘으로 아버지를 일으켜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집에 있던 보자기 천을 이어 묶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운 뒤
119를 불러 응급실로 향했다.

그날 집을 떠나신 아버지는 끝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응급실 검사 결과 폐렴과 경미한 뇌출혈이 확인되었고,
말기 간경변으로 이미 많이 약해진 몸은
적극적인 치료를 견디기 어려운 상태였다.
아버지는 완화치료를 받으며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셨고,
86세의 나이로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이별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을 선물해 주셨다.

의료진도 말기 간경변 진단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 것은
쉽지 않은 경우라고 말씀하셨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평범한 일상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혹시 병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도 품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간경변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이 아니었다.
식도정맥류, 체중 감소, 추위를 많이 타는 변화, 복수와 호흡곤란까지.
결국 폐렴과 뇌출혈이 더해지면서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그 모든 변화는 마지막을 향해 조금씩 이어지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아버지를 지켜보며 느낀 것은
간경변은 결코 단순한 ‘간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병이 진행될수록 한 가지 문제가 지나가면 또 다른 합병증이 이어졌고,
결국 몸 전체의 기능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간경변은 조용히 진행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직접 그 과정을 지켜본 보호자로서, 이 사실만은 꼭 전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지금도 우리 가족과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가족이 겪었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이 글이 말기 간질환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가족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덜어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